알림마당 Notice

HOME알림마당 Notice이주민의 목소리 Voice Of Migrants(Newsletter)

이주민의 목소리 VOM 2014 10월호 이주민의 목소리 - 제 2회 외국인근로자 말하기 대회 아름다운 원고상 시상 작품

페이지 정보

조회 1,337회 작성일 14.10.03

본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딩다이라고 합니다. 저는 4년 전에 노동자로 한국에 왔습니다. 그동안 일하고 돈 벌고, 한국말도 공부했지만 언제나 고향과 가족이 그립습니다.

제 가족은 조용하고 가난한 마을에 삽니다. 예전에는 전기가 안 왔고 VT도 없고 오토바이도 없었습니다. 거기에서 제가 태어났습니다. 우리 집은 작습니다. 집 앞으로 벼가 자라는 논이 있고 뒤에는 산이 있습니다. 오른 쪽에도 산이 있고 왼쪽에는 작은 강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은 계곡 안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때의 우리는 가난한 가족이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 형제, 자매 다 있었습니다. 작은 집에 함께 있으니 분위기가 따뜻했습니다. 그 때의 우리는 아주 행복했습니다.

우리 고향은 7월부터 9월까지 장마철이고 태풍도 옵니다. 매 년 큰 태풍, 작은 태풍이 세 번, 네 번씩 지나갔습니다. 태풍 올 때 바람의 속도는 9급에서 12급까지 올라가곤 합니다. 낮에 폭풍이 와도 걱정하지만 밤에 오면 위험하고 너무 무서웠습니다. 폭풍이 오면 비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집 안에서도 밖의 소리가 잘 들렸습니다. 바람 소리와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큰 나무가 무너지는 소리도 났습니다. 그 때는 나무가 많이 아파서, 산이 화가 나서 우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에 들려오던 개나 고양이의 소리도 안 났습니다. 밤늦도록 잠을 못자서 힘들었습니다. 아침에 들판으로 가면 하얀 물이 있었습니다. 강물이 차올라 들판이 흥건했습니다. 그리고 집 옆의 작은 강이 그날은 큰 강이 되었습니다. 물이 많이 흘러서 다 쓸려 내려갔습니다. 4년 동안 고향을 떠나있었지만 매번 장마가 왔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지금 부모님과 동생은 어떻게 지냅니까? 건강합니까? 궁금하고 걱정됩니다.

우리 가족은 그 때 농장에서 주로 일했습니다. 한번 태풍이 지나면 그 해 수확이 적습니다. 벼, 옥수수가 거센 바람에 다 꺾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구마를 주로 먹었습니다. 저는 그 고구마를 먹으며 쑥쑥 자랐습니다.

장마가 지나가면 덥습니다. 고향의 여름은 너무 더워서 39도 40도 정도까지 기온이 오릅니다. 두 달, 세 달 동안 계속 맑습니다. 어릴 때 점심에 더우니까 친구들과 같이 강으로 가 샤워와 수영을 했습니다. 시원한 물이 참 좋았습니다. 처음에 수영을 못하니까 친구들이랑 못 놀아서 수영을 빨리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수영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두 번, 세 번 연습했지만 많이 아팠고 효과가 없었습니다. 한 해, 두 해 지나가고 제가 언제 수영하는 방법을 알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날씨가 너무 더워서 강에 물이 없어지고 땅이 갈라졌습니다. 수영도 샤워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연을 날렸습니다. 날씨가 더웠지만 우리는 상관없었습니다. 모자도 안 쓰고 그냥 집에서 나왔습니다. 처음 연을 봐서 아주 신기했습니다. 연을 스스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처음으로 연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을 날리자 날지 못했습니다. 한 번, 두 번, 다시 한 번 더 해봤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친구한테서 방법을 배웠습니다. 마침내 연을 날리는 데 성공했을 때 기분이 엄청나게 기뻤습니다. 지금까지 잊지 못합니다.

집 옆에 있는 산에는 큰 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름엔 참 매미가 많이 나왔습니다. 점심시간에 가장 크게 소리가 났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점심 때 집에서 나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매 번 매미가 맴맴 우는 소리를 들으며 몸은 침대에 누웠지만 빨리 산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잠든 뒤에 천천히, 몰래 집에서 나왔습니다. 친구들과 산에 가서 매미를 잡았습니다.

매미가 나무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무에 올랐고 매미를 많이 잡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매미는 울지 않았습니다. 매미가 소리가 안 나네? 제가 그렇게 물었습니다. 암매미는 소리가 안 났고 수매미만 노래를 불렀습니다. 여러분은 알고 있었습니까?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매미를 잡은 뒤에는 버리지 않고 키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키우는지 몰랐습니다. 무슨 먹이를 먹일까요. 몰라서 물만 줬습니다. 그래도 며칠은 살아있었습니다. 나무에 여러 번 올라가다 넘어졌고 올라가서 가시가 박혀 아팠지만 그 추억을 잊지 못 합니다.

조금 더 자랐을 때 우리는 학교에 갔습니다. 그 때 우리 마을엔 유치원이 없어서 다른 마을 초등학교부터 가 배웠습니다. 집부터 학교까지 3km 였습니다. 많이 멀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걸어가니 많이 멀게 느껴졌습니다. 겨울엔 걷고 뛰면 따뜻해져 좋았지만 여름 때는 날씨가 매우 더워서 친구들과 학교에 다녀올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비가 오거나 맑거나 우리는 매일 학교에 갔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언제나 반에서 1, 2위를 다퉜습니다. 그 때는 제가 잘생기고 똑똑한 어린이였습니다. 지금 같지 않았습니다. 가끔 기억하면 조금 자랑스럽습니다. 아침에 학교에 다녀와서 오후에는 물소를 기릅니다. 다른 애들은 공원에 가고 말을 탔지만 우리는 물소를 탔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처음엔 물소를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많이 무서웠습니다. 6살 때 제 몸은 작았고 물소는 큰데 어떻게 소 등에 올랐을까요? 설마 소 머리로 올라갈까요? 맞습니다. 물소가 풀을 먹을 때 제가 두 손으로 뿔을 잡고 머릴 밟아 소 등에 올랐습니다. 위험하지만 물소가 친절해서 괜찮았습니다.

처음엔 소가 무서웠지만 한 달, 두 달 뒤엔 소 등에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여름 오후에 들판에서 물소와의 추억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친구가 플루트를 불었고 저는 소 등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았습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후에 친구와 나갔는데 눈 떠보니 저녁이었습니다. 친구도 없고 아무도 없이 혼자 들판에 있어 많이 무서웠습니다.

겨울에는 날씨가 너무 추웠기 때문에 우리는 불을 뗐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만 고구마를 서리해서 먹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집의 고구마를 먹을 수도 있었지만 서리해서 먹는게 괜히 더 맛있었습니다. 그렇게 구워서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제 유년시절엔 장난감도 인형도 없고 부모님과 함께 공원을 가지도 못했지만 친구와 강에서 놀고 오후에는 들판에서 연을 날렸습니다. 그리고 미래가 밝을 꿈을 꿨습니다. 유년시절 때는 어떻습니까? 명절 선물이 궁금해 잠을 못 자고 오래 기다리곤 하지요. 공책이나 학용품 하나, 둘 정도 받지만 아주 기대되었습니다. 새 옷 한 벌과 공책 한권 바라곤 했습니다. 새 학기를 준비하는 의미였습니다.

시간을 돌이킬 수 없고 유년시절은 한 번 뿐입니다. 어릴 적엔 평온하고 달콤한 추억들을 만들며 살았습니다. 고통스럽고 지루한 일들이 있더라도 다시 생각해보면 가장 편안한 날들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고 올바르고 공정한 아이였지요. 삶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매년 꽃은 폈지만 제 유년시절은 지나갔고 그 시절은 제게 어머니가 한 분인 것과 같이 오직 한때였습니다. 그리고 매년 피어나는 꽃처럼 유년시절에 대한 추억은 올해도 분홍색으로 피었습니다.

글/사진인물 : 딩다이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4 4 (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